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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비행기록

[교환학생 기록]서울 인천→바르샤바, LOT 폴란드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후기

시나몬롤맨 2023. 9. 5. 07:45

엄청나게 짧게 느껴진 여름방학, 그 마지막 날에 곧 개강하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발권은 5월 중순에 했어요. LOT 공식 홈페이지에서 티켓팅했고, 한화로 약 250만 원 정도였어요. 원래부터 짐을 좀 많이 가져갈 생각이었는데, 해당 시기에 항공권을 검색해 보니 왕복 위탁수하물 추가한 타 항공사 이코노미나 LOT 비즈니스나 가격이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차피 원래보다 비싸게 항공권 사는 거, 10만, 20만 원 정도 더 주고 편하게 가자는 마인드로 비즈니스로 발권했습니다. 참고로 LOT 장거리 비즈니스석 티켓에는 32kg 위탁수하물 세 개가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어요. 이 정도면 수하물 허용량만큼은 타 항공사 비즈니스와 비교했을 때 최상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서울 인천→바르샤바

 

ICN/RKSI→WAW/EPWA
편명: LOT 98 (LO98/LOT98)
이륙 시각: 23년 8월 31일 12:07 (GMT+9)
착륙 시각: 23년 8월 31일 16:48 (GMT+2)
비행 시간: 11시간 41분
기종: B787-9 (B789)
등록번호:  SP-LSE (2019년 4월 초도비행, 기령 4.4년)
좌석: 1A (비즈니스, 창가)
 

오늘 탄 비행기

공항에 일찍 도착해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낸 뒤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라운지는 아시아나 라운지 서편과 싱가포르 항공 실버크리스 라운지에 방문했고, 라운지 후기는 별도로 올릴 생각이에요.

 

비즈니스 구역 전경

 

-개관

 
비행기에 들어서니 폴란드의 자랑, 쇼팽의 폴로네즈 op53(흔히 '영웅'이라고 부르는 그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참 좋은 국가 마케팅인 것 같아요.
 
비즈니스 구역은 2-2-2 배열 4줄, 총 24석의 작은 객실이에요. 오늘은 비즈부터 이코노미까지 완전히 꽉꽉 채워서 갔습니다. 저는 1A석 창가 좌석에 앉았는데, 이 배열에선 창가 자리에서 복도로 나가려면 옆에 있는 사람을 넘어가야 합니다. 물론 좁은 이코노미 창가에서 나가는 것보단 100배 낫지만요.
 

비즈니스석

 

-좌석 및 침구

좌석은 그냥저냥 편안합니다. 개별 에어벤트는 없고, 가운데 더듬이 독서등은 돌려서 켜거나 끄는 방식인데, 접촉 문제인지 아주 섬세하게 조작해야 원하는 대로 켜고 끌 수 있었어요. 

 

비즈니스석 2

 
수납 공간은 많지 않아요. 사진에 보이듯 두 화면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과 발받침 사이의 세로로 된 공간, 발받침 아래 공간, 리모컨과 물이 있는 공간 같지 않은 공간. 이게 전부에요. 그래서 아이패드와 폰, 에어팟 등을 굉장히 불편한 위치에 보관해야 했습니다.
 

하찮은 수납공간

 
좌석 컨트롤도 직관적이지 않아요. 꾹 누르고 있어야 해당 모양이 되는데, 침대 만들기 누르면 두 번 중 한 번은 의자가 세워지더라고요.
 

좌석 컨트롤. 보조배터리는 옆 사람 거

 
완전히 눕혀 침대를 만들면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아요. 제 키가 175쯤 되는데, 제가 누워서 다리 쭉 뻗으니까 모니터 아래에 발이 닿고, 정자세로 누우면 어깨 양 옆 공간도 별로 남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나름 풀 플랫이라서 잠은 괜찮게 잤습니다. 낮 비행이라 자다 깼다 했지만 12시간 중 5시간 정도는 잔 것 같네요.
 

스스로 만든 이부자리

 
LOT 비즈니스석에 있어서 가장 불만족스러웠던 점 두 가지 중 하나가 침구인데, 좌석에 스스로 덮는 얇은 시트와 이불, 베개가 주어져요. 이불과 베개는 그렇다 치는데 시트가 별로에요. 스스로 깔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너무 얇아 존재감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턴다운 서비스까지는 바라지 않고, 약간이나마 두께감 있는 깔개만이라도 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화장실

 

 

비행 내내 청결하게 유지되었고,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이코노미 화장실과 거의 같아요. 다만 핸드크림과 방향제 스프레이가 비치되어 있다는 점만큼은 달랐어요. 다른 후기들을 보면 생화를 꽂아 놓는 경우도 있던데, 이번 비행에는 없었습니다.
 

-IFE(기내 엔터테인먼트)

 

IFE

 
화면은 15인치쯤 되어 보이는 터치 스크린입니다. 구성은 한국 항공사들보단 나아요. 컨텐츠는 LOT 웹사이트(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존윅 4, 아바타 물의길 같은 최근 영화들 몇 개를 포함해 꽤 많이 있고, TV 프로그램은 별 거 없어요. HBO MAX가 있길래 뭐가 있을까 하고 봤는데 아니나다를까 왕좌의 게임이나 해리포터 같은 유명 타이틀은 거의 없더라고요. 게임은 그냥 흔한 IFE용 게임들인 것 같은데, 저는 IFE 게임은 좋아하지 않아서 넘어갔습니다. 에어쇼는 한 가지 화면만 고정으로 보여줘서 별로더라고요.
 

에어쇼. 그래도 원래 IFE중 에어쇼를 가장 좋아해서 비행 내내 이것만 틀어 놨습니다.

 

터치형 리모콘이 있는데, 발열이 심하고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아요. 그나마 화면을 직접 터치하는 건 아주 잘 돼서 다행이었어요. 그래서 리모콘보다는 그냥 스크린을 직접 터치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애초에 얼마 건드리지도 않았지만요.

 

리모컨

 
헤드폰 음질은 딱 나쁘지는 않은 정도에요. 중간 음역대는 무난한데 고음이나 저음은 깨져요. 노이즈 캔슬링은 없고요. 근데 치명적인 단점으로, 잭 쪽을 건드리면 귀 아플 정도의 잡음이 나더라고요. 얘만 접촉 불량인 것 같기도 하지만요. 어차피 오래 사용할 생각은 없었으니 음질 테스트만 해 보고 더 이상 사용하진 않았습니다.
 

헤드폰

 
헤드폰 성능을 테스트하려고 음악에 들어갔는데, 열 개가 채 안 되는 클래식 앨범 중에 쇼팽 앨범은 그나마도 단 하나더라고요. 아무리 IFE로 음악 듣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폴란드 항공사인 만큼 쇼팽 앨범들을 더 넣을 만도 한데 말이죠. 근데 그 단 하나 있는 쇼팽 앨범의 주인공이 무려 조성진입니다. 2015 쇼팽콩쿨 우승했을 때 나온 그 앨범이더라고요. 오랜만에 국뽕이 차오르는 모먼트였어요. 

 
조성진의 앨범

 
아무튼 비행 중에 IFE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이패드에 다운받아 놓은 디즈니플러스 드라마나 봤어요.
 

-어매니티 킷

 

어매니티

 
침구류와 더불어 LOT에게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이 이 어매니티 킷입니다. 이것만큼은 도저히 좋게 봐 줄수가 없더군요. '친환경'을 표방하는데, 이건 그냥 대놓고 원가절감이에요. 구성품의 수준은 좋게 봐 줘야 프리미엄 이코노미입니다. 코로나 전 유럽행 아시아나 이코노미에서도 이 비슷하게 나왔어요.
 

슬리퍼. 어매니티 킷 구성품 중 그나마 가장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구성품은 안대, 이어플러그, 립밤, 페이셜 크림, 치약칫솔과 슬리퍼가 전부에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한숨만 나옵니다. 안대는 다이소에서 파는 천 원짜리 그것과 퀄리티가 다를 게 없었고, 이어플러그는 너무 빡빡해서 착용하면 귀가 아팠어요. 칫솔은 칫솔질 한 번 할 때마다 솔이 한 가닥씩 빠져나와요. 아무리 싼 비즈니스라 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더라고요. 
 

-식음료

 
다행히도, 이제는 이번 비행에 관한 좋은 이야기만 남았습니다. 나머지 서비스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거든요.
 

메뉴

 

탑승이 완료되고 곧 승무원 분들이 웰컴 드링크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는 샴페인, 오렌지 주스, 물 중에 샴페인을 선택했는데 개인적으론 그냥 그렇더라고요. 약간 비싼 까바 느낌이었어요. 향은 좋은데 입에선 산미만 너무 쨍하고 고소함과 감칠맛이 없어서 제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웰컴 드링크라 기분 좋게 마셨습니다. (해당 샴페인 정보-비비노 링크)

 

웰컴 드링크&핑거 푸드

 
샴페인을 마시고 있으니 핑거 푸드도 하나씩 나누어 줬습니다. 크림치즈와 파프리카, 토마토, 부드러운 빵. 파프리카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도 맛있게 먹었어요.
 

물수건과 식탁보

 
이륙한지 약 한 시간 뒤부터 창문이 어두워지고 식사 서비스가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따뜻한 물수건을 나눠주고, 다시 가져간 뒤 식탁보를 깔아 줘요. 
 

 
음료와 견과류가 가장 먼저 나와요. 마음에 좀 안 들어도 저는 식전주로 샴페인을 또 선택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마시는 샴페인은 항상 특별하니까요.
 

애피타이저

 
견과류를 받고 좀 오래 기다렸어요. 약 15분 뒤에야 애피타이저가 나왔고, 그로부터 또 5분이 지난 뒤에는 빵이 나왔습니다. 구성은 참치 타다끼와 오리엔탈 샐러드, 관자와 새우 버터구이, 그리고 왜 있는지 모를 볶음고추장이에요. 참치 타다끼는 무난하게 슴슴한 맛이었고, 오리엔탈 샐러드는 약간 간이 강했지만 괜찮았어요.
 
하이라이트는 관자 새우 요리였는데, 버터가 잔뜩 들어간 듯한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면서도 느끼하지 않게 같이 주어진 레몬이 밸런스를 아주 잘 잡아주었습니다. 이것만 파는 곳이 있으면 이것만으로도 한끼 식사를 할 수 있겠다 싶은 아주 맛있는 요리였어요. 다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은, '한국 스타일 해산물 요리'라 적혀있다는 거에요. 대체 어느 구석이 '한국 스타일'인지 모르겠네요. 뭐 어때요. 맛있으면 됐죠.
 

따뜻한 빵

 
빵은 따뜻하게 데워서 바구니에서 직접 나누어 줬습니다. 촉촉하면서 뜨끈해서 버터와 함께 먹으니 맛있었어요.
 

메인 닭가슴살 요리

 
메인으로는 닭가슴살 스테이크를 시켰어요. 닭고기는 수비드로 익혔는지 포크만 가져다 대도 슥슥 잘릴 정도로 매우 부드러운 상태였습니다. 간은 살짝 강한 듯 딱 적당했고, 머스타드 소스는 코를 찌르는 불쾌한 매콤함 없이 느끼함을 살짝만 잡아주는 역할을 아주 잘 수행했어요. 매쉬포테이토는 아는 그 맛이고, 당근과 브로콜리도 수비드로 익혔는지 거의 삶은 감자처럼 포슬포슬하게 부서졌어요. 당근은 좋았는데 브로콜리는 너무 부서져서 먹기 약간 불편하더라고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메인이었습니다.
 

 
와인은 드라이한 토카이산 푸르민트를 곁들였는데, 거의 청포도 사탕만큼 달큰한 과일향과 부드러운 오크 터치, 은근한 잔당감이 정말 기분 좋은 와인이었습니다. 비슷한 가격대의 부르고뉴나 미국산 샤도네이는 찍어누를 만한 퀄리티였어요. 너무 맛있었어요. 안타깝게도 비비노에는 이 와인에 관한 정보가 없네요.
 

디저트

 
디저트는 트롤리에서 나눠줍니다. 저는 치즈와 유자 케이크를 선택했어요. 치즈를 주문하면 세 종류(브리, 뮌스터, 그뤼에르)와 포도, 말린 살구를 함께 줘요. 유자 케이크는 크림이 대부분이고 빵은 맨 밑에 아주 조금 깔려 있더라고요. 치즈는 싸구려 양산형보다는 확실히 질이 좋았고, 유자 케이크는 너무 새콤하지 않고 밸런스가 좋았습니다.
 
이렇게 아주 마음에 들었던 첫 번째 식사를 마쳤습니다. 전체적으로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고, 개인적인 베스트 메뉴는 애피타이저의 관자 새우 요리였어요. 이건 정말 돈 주고 다시 사 먹고 싶네요.
 

간식

 
첫 식사가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간식을 받았어요. 한국 출발이라 그런지 약식도 있었고, 이외에 초코바, 아몬드, 프레첼, 샌드위치, 그리고 사진엔 없지만 신라면 작은컵도 있었습니다. 약밥과 초코바는 나중에 먹었고, 과자와 샌드위치는 아까 맛있게 먹은 푸르민트와 함께 먹었습니다. 솔직히 프레첼은 그냥 그랬지만 샌드위치는 맛있었어요.
 

두 번째 식사

 
착륙 2시간 전에 두 번째 식사가 나왔습니다. 따뜻한 물수건과 식탁보, 따뜻한 빵까지는 아까와 같은데, 이번엔 메뉴 선택 없이 모두가 같은 식사를 한 트레이에 받았어요. 왼쪽 가운데의 샐러드는 생밤-닭가슴살-파프리카 샐러드에요. 생밤 씹고 약간 당황했지만 그냥 무난한 맛이에요. 이것도 '한국 스타일'이라는데 도대체 어디가 한국 스타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위쪽 가운데의 소고기 카르파초는 선드라이드 토마토, 올리브와 함께 나왔고, 예상 가능한 그 맛이었습니다. 백김치는 굉장히 슴슴한 맛이었어요. 간이 거의 안 되어 있더라고요.

연어 요리는 촉촉하니 괜찮았어요. 이것도 수비드인 것 같네요. 근데 볶음밥은 약간 심심해서, 웬만하면 찾지 않는 고추장의 힘을 약간 빌렸습니다. 디저트로 나온 과일은 배, 사과, 수박, 포도인데 배가 굉장히 맛있었어요. 나머지는 그냥 아는 그 맛이고요.


이번 식사엔 와인 대신 맥주를 부탁했는데 미지근하게 줘서 아쉬웠어요. 헝가리의 필스너 스타일 라거인데 쌉쌀하고 고소하니 맛있긴 하더라고요. 시원하게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식사를 마치고 받은 에스프레소입니다. 제 인생 최고의 에스프레소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디카페인 옵션이 있다는 점, 그리고 컵까지 따뜻하게 데워서 나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착륙 한 시간쯤 전에 받은 초콜릿입니다. 폴란드산이고 안에 자두가 들어 있었어요. 
 
식음료 서비스는 전체적으로 매우 좋았습니다. 확실히 케이터링에 많은 신경을 쓴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겉으로만 번드르하고 실속은 없는 비즈니스석 식사도 없지 않은데, LOT의 기내식은 거를 메뉴가 거의 없이 다 맛있었어요.
 

-서비스

무난합니다. 아시아권 항공사들의 극진한 환대와 대접에 익숙하다면 좀 딱딱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유럽 항공사 승무원들은 원래 그렇게 깍듯하지는 않아요. 언뜻 차갑게 느껴져도, 무언가 정당한 부탁을 했는데 무시하는 경우는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전 오히려 유럽 항공사들에서 많이 보이는 아주머니 승무원들 특유의 능숙함과 푸근함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대신 식사 도중에 돌아다니며 음료를 한 번 정도 더 권하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총평

들어가기에 앞서 수하물 추가한 이코노미와 큰 가격 차이가 없다고 했는데, 이 정도면 그 차액을 지불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최상급의 평가를 받는 항공사들의 비즈니스(카타르, 싱가포르, ANA, …)와 겨룰 정도는 절대 아니지만, 이코노미보다는 100배 낫죠. 요즘 항공료가 많이 비싸졌는데, 이 정도 가격대라면 재탑승 의사도 있습니다. 특히 짐이 많다면 더더욱 LOT를 선택할 만하고요. 
 
저는 다음 비행인 바르샤바-부다페스트 비즈니스석 후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